두 사제를 앞에 두고 손을 들어 축복하는 자세다. 여사제가 말하지 않는 쪽이라면 교황은 가르치는 쪽이다. 이미 있는 방식, 먼저 간 사람들의 답, 배워서 얻는 것.
교황이 나오면 대개 혼자 새로 만들 필요가 없는 자리다. 남들이 다 해본 일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고 있거나, 물어보면 될 것을 안 물어보고 있다. 이 카드는 자존심을 접고 기존 방식을 한 번 따라해보라고 한다. 틀을 부수는 건 틀을 익힌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자격과 절차를 말하는 카드이기도 하다. 계약서, 자격증, 정식 등록, 제대로 된 상담. 대충 넘어가도 될 것 같은 지점에서 이 카드가 나오면 대충 넘어가지 말라는 쪽으로 읽는다.
거꾸로 나오면 형식만 남은 상태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하고 있는데 왜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혹은 반대로 필요한 절차마저 건너뛰는 상태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인지는 이렇게 갈린다 — 이 규칙이 없어지면 누가 곤란해지는가. 아무도 아니면 형식이고, 누군가면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교황을 낡은 것, 답답한 것으로 읽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이 카드가 말하는 전통은 오래됐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검증됐다는 뜻이다. 남들이 먼저 겪어 만들어 둔 길이 있는데 굳이 처음부터 다시 하려는 자리에서 나온다. 배우는 걸 자존심 문제로 만들고 있지 않은지 묻는 카드다.
바보와 나란히 나오면 배운 대로 갈지 처음부터 할지의 갈림길이다. 악마와 겹치면 형식만 남은 관계나 조직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교황은 소속을 말하는 카드라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먼저 떠올리면 읽기 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