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다. 붉은 망토를 입은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바위투성이 언덕 쪽으로 걸어 올라간다. 앞쪽엔 잔 여덟 개가 가지런히 쌓여 있는데, 윗줄 한 칸이 비어 있다. 하늘엔 달이 떠 있고, 사람은 그 잔들을 등지고 있다.
컵 8은 떠나는 카드다. 겉보기엔 부족한 게 없는데 마음이 더 이상 거기 머물지 않는다. 연봉도 괜찮고 동료도 나쁘지 않은데 일이 아무 의미가 없어진 회사, 싸운 적도 없는데 함께 있어도 혼자 같은 관계. 이 카드는 그런 자리에서 등을 돌리고 다른 걸 찾아 나서는 사람을 그린다. 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대개 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거꾸로 나오면 발이 안 떨어진다. 떠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 미련 때문에 머물거나,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같은 자리에서 또 아파한다. 다른 갈래로는, 아직 떠날 때가 아닌데 기분에 떠밀려 나서려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든 머무는 이유, 떠나는 이유를 한 줄로 적어 보면 흐린 쪽이 드러난다.
짚어 볼 건 이것. 지금 떠나려는 게 무언가를 찾으러 가는 건가, 그냥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은 건가.
실패해서 도망치는 그림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데, 잔은 쓰러지지 않았다. 가지런히 쌓아 둔 걸 두고 간다. 무너져서 떠나는 게 아니라 이걸로는 더 채워지지 않아서 떠나는 것이다.
은둔자와 함께면 떠남이 혼자만의 시간을 향한다. 검 6과 나란히 나오면 실제로 옮겨 가는 쪽, 이사나 이직처럼 몸이 움직이는 변화로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