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몸집의 남자가 나무 벤치에 앉아 팔짱을 끼고 흡족하게 웃고 있다. 붉은 모자를 썼고, 등 뒤엔 파란 천을 덮은 둥근 선반 위로 잔 아홉 개가 줄지어 놓여 있다. 다 채워 두고 그 앞에 앉은 모습이다.
컵 9는 소원 카드라고 불린다. 바라던 일이 이뤄지고, 지금은 마음이 흡족하게 채워지는 쪽이다. 크게는 합격이나 계약, 작게는 오래 벼르던 걸 드디어 사거나, 주말 하루를 온전히 내 마음대로 쓰는 일. 공통점은 남이 정해 준 기준이 아니라 내가 원하던 것이라는 점이다. 이럴 때 괜히 미안해하거나 다음 걱정부터 꺼낼 필요는 없다.
거꾸로 나오면 다 가졌는데 허전하다. 남들 보기엔 다 갖춘 것 같은데 정작 마음은 비어 있는 경우가 하나. 다른 하나는 채워도 채워도 「하나만 더」를 외치는 쪽이다. 장바구니가 비는 날이 없는데 기쁜 날은 별로 없다면 이쪽에 가깝다. 둘 다 더 가지기 전에 처음 원한 게 뭐였는지 짚어 볼 일이다.
컵 9가 묻는 건 이렇다. 지금 원하는 게 이뤄지면, 그다음 날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다 잘된다」로 읽기 쉬운데, 컵 9의 만족은 꽤 개인적이다. 남자는 혼자 앉아 있다. 같이 기뻐할 사람까지 들어간 그림은 컵 10이다. 내 몫은 채워졌지만 그걸 누구와 나눌지는 아직 그림 밖에 있다.
컵 10과 함께면 혼자 누리던 만족이 가까운 사람들과의 행복으로 넓어진다. 악마와 겹치면 만족이 탐닉으로 기운다. 즐거움이 습관이 되어 끊기 어려운 쪽을 먼저 본다.